왜 여전히 배워야 하는가?
AI 시대에 앎의 즐거움은 어디로 갔는가
AI 때문에 개발자들이 배움의 의욕을 잃고 있다. 나도 그랬다.
예전에는 배운 기술을 업무에 적용하고 확장해나갈 수 있었다. 문제를 마주하면 그 문제의 정체를 파악하고, 몰랐던 부분을 학습하고, 그렇게 하나씩 채워나가는 과정에 ’앎의 즐거움’이 있었다. 하지만 지금은 AI에게 물어보면 10초 안에 지식과 해결 방법이 나오는 시대다.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이 즐거움을 찾아야 할까?
답은 즐거움의 위치가 옮겨갔다는 데 있다.
우리가 느낀 앎의 즐거움은 정보를 획득한 순간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. 모르는 상태를 견디고, 가설을 세우고, 틀리고, 다시 시도해서 마침내 이해에 도달했을 때 나온 것이다. AI는 그 과정을 생략시켰다. 즐거움 자체를 없앤 게 아니라, 즐거움의 재료였던 시행착오를 없앴다.
그래서 학습의 목적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. 예전의 학습은 ’할 수 있게 되는 것’이었다. 문법을 몰라 코드를 못 짰고, API를 몰라 기능을 붙이지 못했다. 지금은 그것이 통째로 공짜가 됐다. 누구나 동작하는 코드를 얻는다. 기준이 올라간 만큼 변별력 또한 중요해졌다. ‘이 구조가 타당한가?, 이 선택의 대가는 무엇인가?, 6개월 뒤에 이 결정이 어디서 문제를 일으키는가?’ AI가 10초 만에 내놓은 답이 옳은지 판단하는 능력만큼은 AI에게 물어서 얻을 수 없다.
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.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AI를 쓰는 게 아니라 AI가 내놓은 결과를 옮겨 적는 Meat Proxy에 불과하다. 답을 검증할 수 없으면 책임을 질 수 없고,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결정은 주어지지 않는다.
방법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. 의도적으로 어려움을 남겨두는 것. 답을 받기 전에 자기 답을 먼저 만들어보고, 동작하는 결과에 만족하지 말고 왜 그 방식인지까지 물고 늘어지고, 가끔은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영역을 시간을 들여 파는 것이다. 지식과 배움의 깊이는 여전히 시간으로만 살 수 있다. 깊이가 얕아서 느낄 수 없던 즐거움이, 깊어질수록 즐거움이 커질 것이다.
앎의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았다. 답을 얻는 것에서 답을 판단하는 데로 옮겨갔을 뿐이다. 모두가 같은 답을 10초 만에 받는 시대에, 그 답을 의심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다.
